"얘야, 이거 또 뭐가 눌렸는지 모르겠어. 화면이 이상해."
엄마에게서 오는 전화는 요즘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어쩌다 잘못 누른 버튼 하나가 화면을 바꿔놓고, 앱이 사라졌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세상에 아직 완전히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세계가 그들에게 너무 빨리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멈춰진 세대
요즘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사진을 보내고, 공과금도 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헤매는 이들도 많다. 특히 60대 이상 세대는 디지털 기술의 '사용자'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이방인'에 가깝다.
엄마는 종종 말한다. “나는 너희처럼 어릴 때부터 이런 걸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겁이 나.”
스마트폰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실수할까 봐, 잘못 건드릴까 봐 두려운 그 마음은 단순한 '기술 미숙'이 아니라,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기술은 점점 더 똑똑해지는데, 사람은?
우리는 AI 스피커에게 음악을 틀어달라 말하고, 냉장고가 알아서 식재료를 관리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스마트한 기술들이 모든 사람에게 스마트하게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엄마가 전자문서로 도착한 건강검진 안내서를 보고 난감해하셨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니? 종이로는 안 와?” 그렇게 다시 병원에 전화해 종이 서류를 부탁해야 했다. 기술이 사람을 배려하지 않을 때, 사람은 점점 더 기술에서 멀어진다.
편리함을 위한 기술이 모두에게 편리한 것은 아니다. 특히 디지털 전환이 빠를수록, 그 그늘도 더 짙어진다.
디지털 포용, 그것은 속도가 아닌 온도의 문제
많은 기관에서 '디지털 포용'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고령층, 장애인, 소외계층도 디지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속도보다 **‘사람을 향한 배려의 온도’**다.
어르신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칠 때, 우리는 자주 조바심을 낸다. "이걸 몇 번을 알려드려야 하지?"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분들이 살아온 시간만큼, 천천히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는가?
스마트폰 교육을 받으시는 어르신들 중엔 자신의 실수를 미안해하며 “내가 너무 바보 같지?”라며 웃는 분들도 계신다. 그럴 때면 마음 한켠이 시린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 그들을 더 외롭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기술보다 먼저 가야 할 것, ‘이해와 존중’
기술은 언제든 배울 수 있다. 중요한 건 배우는 사람의 속도에 우리가 함께 맞춰줄 수 있느냐다.
엄마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젠 화면이 이상해졌다고 전화하면 나는 화내지 않는다. 대신, 엄마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엄마는 꼭 이렇게 말하신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디지털 시대의 스마트라이프란, 단지 최첨단 기술을 쓰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설명해주고, 함께 웃는 삶의 방식이다.
기술이 사람을 앞질러 달려갈 때, 우리는 그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누군가의 속도에 발을 맞춰주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스마트한 삶이고, 따뜻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