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보고서는 쌓이는데, 공장·창고·현장은 그대로인 느낌 드신 적 있나요?
오늘 글은 “멋진 슬로건”이 아니라, 현장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후테크 지도를 한 번 같이 펴보려는 시도입니다.
서문: “좋은 기술 같은데, 우리 회사에 어떻게 쓰죠?”
“보고서는 많은데, 내 현장에 어디부터 꽂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한 제조 공장장의 말
요즘 ‘기후테크’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열분해, 바이오전환, CCUS, 수소, 배터리… 이름은 멋지지만, 막상 공장이나 물류센터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지금 쓰는 보일러, 지금 나가는 폐기물, 지금 나오는 전기요금에 이 기술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기술 리스트”가 아니라, 우선순위와 순서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용어는 줄이고, “결국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할지”에 초점을 맞춰 정리해볼게요.
이 글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핵심 요약)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효율과 계측으로 바닥을 다지고, 회수와 재활용으로 레벨을 올린 뒤, 전환·대체로 점프한다.”
많은 회사가 멋진 기술부터 도입하려다가, 현장과 숫자가 따라오지 않아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기술 이름보다 “기준과 순서”를 먼저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 키워드 | 뜻 | 실무 포인트 | 현장에서 쓰는 질문 |
|---|---|---|---|
| TRL | 기술성숙도(1~9) | 7 이상이면 ‘남이 돈 내고 돌려본 단계’ | “이 기술, 실제 상업 플랜트 몇 군데나 돌아가나요?” |
| Capex/Opex | 투자비/운영비 | 3~5년 회수 가능한지부터 보기 | “보조금 빼고도 회수 기간이 몇 년쯤 나오나요?” |
| 오프테이크 | 장기 판매·구매 계약 | 특히 열분해·수소·CCUS에 중요 | “누가, 얼마나 오래, 어떤 조건으로 사줄까요?” |
| 스택 | 기술을 층층이 쌓기 | 계측 → 효율 → 회수 → 전환 순으로 설계 | “이 기술, 기존 설비 위에 어떻게 덧붙일 수 있을까?” |
기후테크 큰 지도: 세 가지 질문으로 나눠보기
기후테크를 외워야 할 기술 목록이 아니라, 세 가지 질문으로 먼저 나눠볼게요.
- ① 뭐가 나가고 있지? — 폐기물·배출·열·누수
- ② 뭐가 너무 비싸지지? — 전기·가스·원료 단가
- ③ 뭘 바꾸면 고객에게도 매력적일까? — 친환경 제품·EPD·ESG 요구
이 세 질문을 가이드로 삼고, 기술을 크게 세 묶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폐기물 · 자원순환
- 플라스틱 열분해 — 기계재활용이 안 되는 필름·복합의 출구
- 유기물 바이오전환 — 음식물·슬러지를 가스/에너지로 전환
- 고형연료·열회수 — 태우던 열·연기를 다시 에너지로
- 로봇·광학 분류 — 사람이 하던 분리 작업의 품질·속도 개선
언제? 처리비가 계속 오르고, 매립·소각 규제가 강해질 때
2) 소재 · 제조 공정
- 대체 소재 — 플라스틱 일부를 종이·섬유·바이오 소재로
- 저탄소 시멘트·철강 — 같은 강도, 낮은 탄소
- 재생 폴리머 — rPET, rPP 등 재생 원료 품질을 제품 수준까지
- 공정 전기화 — 가스 버너를 전기히터·히트펌프로 전환
언제? 고객이 “탄소 발자국·EPD 자료 주세요”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
3) 에너지 · 시스템
- 분산형 저장(BESS) — 피크 요금·태양광 유휴 전력 줄이기
- 전력 최적화(EMS·DR) — 설비를 똑같이 쓰고도 요금은 덜 내는 법
- 수소·전해 — 장기적인 연료 전환 옵션
- CO₂ 포집·활용(CCUS) — “굴뚝에서 나간 뒤”를 붙잡는 기술
언제? 전기요금 고지서를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올 때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세 장면
“그래도 여전히 그림 같은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실제로 자주 마주치는 세 가지 장면을 그려보겠습니다.
📌 A. 물류센터 — 전력 피크 줄이기부터 시작
장면 — 새벽 피킹이 시작되는 시간, 컨베이어·지게차·냉동창고가 한꺼번에 돌아가면서 피크 전력이 치솟습니다. 계약전력은 계속 올라가고, kWh 단가도 오른 지 오래죠.
- 1단계: 계측 — 어느 시간·어느 설비에서 피크가 튀는지 스마트 미터로 먼저 보기
- 2단계: EMS — 냉동기·충전 스케줄을 나눠 돌려 피크 단계 줄이기
- 3단계: BESS — 피크 1~2시간을 저장장치로 깎아내기
- 4단계: DR 참여 — 전력 시장 프로그램 참여로 추가 수익 소스 만들기
| KPI | 도입 전 | 현실적인 목표(1년) |
|---|---|---|
| 피크 전력(kW) | 100% | -20~25% |
| 전기요금(연간) | 기준 | 10~15% 절감을 1차 목표로 |
| 자가소비율(태양광 연계 시) | 낮음 | +20%p 이상 |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는 기분이 처음으로 덜 무거워졌습니다.” — 한 물류센터 에너지 담당자
📌 B. 플라스틱 선별장 — 팔리지 않던 ‘애매한 폐기물’의 출구 만들기
장면 — 투명 PET, 단일 재질은 잘 팔립니다. 문제는 필름, 다층 포장, 오염된 플라스틱입니다. 처리비를 내고 버리자니 아깝고, 제품으로 팔자니 품질이 안 나옵니다.
- 전처리·세척으로 염소·오염도 낮추기
- 소형 열분해 설비로 오일 생산, 파일럿부터 시작
- 정유·석화사와 오프테이크 논의 — 품질 기준과 가격 공식 미리 합의
- 데이터 축적 — 하루 투입량·수율·성분을 쌓아서 금융·투자 설득 자료로 활용
| KPI | 도입 전 | 현실적인 목표(2년) |
|---|---|---|
| 무등급 폐기물 비중 | 높음 | 50~70%를 유가 스트림으로 전환 |
| 톤당 순비용 | 순수 처리비 지출 | ‘0’ 또는 소폭 흑자까지 |
| 장기 계약 비중 | 스팟 거래 위주 | 2년 이상 오프테이크 1건 확보 |
“예전에 돈 주고 버리던 것에서, 조금씩이지만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C. 레디믹스 콘크리트 — 조용하지만 큰 변화, 저탄소 레시피
장면 — 현장은 똑같이 타설하고 양생합니다. 달라진 건 레시피와 서류입니다. 시멘트 일부를 저탄소 바인더로 바꾸었고, 그 결과물로 EPD 인증을 받아 입찰에서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 클링커 비율 감소 + 활성 점토·석회석 혼합 등 레시피 옵션 검토
- 압축강도·양생 곡선을 기존 제품과 비교해 동등성 검증
- EPD 발급 후 대형 프로젝트·공공 발주처에 제안 자료로 활용
- 단가만이 아니라 “톤당 CO₂ 절감량”까지 함께 보고하는 문화 만들기
| KPI | 도입 전 | 목표(12개월) |
|---|---|---|
| tCO₂e/㎥ | 기준 100% | 25~35% 감축 |
| 품질 클레임 | 기존 수준 | 동일하거나 감소 |
| 저탄소 제품 매출 비중 | 0~5% | 20% 이상 |
“동일 단가에 탄소가 낮다는 건, 영업팀에게 새로운 무기였습니다.”
단가·성숙도·리스크를 한눈에 보는 표
아래 표는 기술별 대략적인 성숙도(TRL), 비용 구조, 리스크 포인트를 정리한 것입니다. 현장마다 숫자는 다르지만, “어디서부터 손대야 덜 위험한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 기술 | 성숙도(TRL) | 비용·경제성 | 주요 리스크 | 주요 수익원 |
|---|---|---|---|---|
| 전력 EMS·DR | 8~9 | 낮은 Capex, 1~3년 회수 가능 사례 다수 | 데이터 품질, 조직이 안 쓰는 문제 | 전기요금 절감, DR 인센티브 |
| BESS(1~2h) | 8~9 | 중간 수준 Capex, 요금제에 따라 수익성 차이 | 배터리 수명, 화재·안전 규제 | 피크 절감, 자가소비 확대 |
| 플라스틱 열분해 | 6~8 | Capex 다소 높음, 수율·오일 가격 민감 | 오일 품질 변동, 규제·인허가 | 오일 판매, 처리 수수료(게이트 피) |
| 바이오가스/업그레이드 | 7~9 | 안정적 경제성, 기질·전력 단가에 영향 | 원료 품질, 냄새·환경 민원 | 전력·열 판매, RNG·인증서 |
| 저탄소 시멘트·바인더 | 7~9 | 레시피 전환 중심, 기존 설비 활용 가능 | 품질 인증, 고객 수용성 | 프리미엄 단가, 녹색 입찰 수주 |
| 수소 전해(PEM/ALK) | 6~8 | Capex·전력비 모두 높음, 장기 전략용 | 전력 단가, 이용률 확보 | 수소·암모니아·P2X 제품 판매 |
| CO₂ 포집·활용(CCUS) | 5~7 | 현재는 높은 Capex, 파일럿 단계 많음 | 농도·열원, 법·제도 변화 | 탄소 크레딧, 원료·소재 전환 |
① 전기·연료·폐기물 비용 상위 3개를 뽑고, ② TRL 7 이상, 3~5년 회수 가능한지부터 체크해보시면 실패 확률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KPI & 실행 체크리스트: “이번 분기엔 여기까지만”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어떤 업종이든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기본 KPI가 있습니다. 다음 지표들을 월 1회만 꾸준히 추적해도, 투자·도입 판단이 훨씬 쉬워집니다.
핵심 KPI(월간)
- 에너지 강도 — kWh / 톤(또는 제품 1단위)
- 열 회수율 — 배기가스·온배수에서 되찾는 비율
- 회수·재활용률 — 톤당 폐기물 중 가치 회수 비중
- 톤당 처리단가 — “버리는 데 드는 돈”이 얼마나 줄었는지
- tCO₂e 절감 — 월간·누적 감축량
투자 전 확인할 것
- 오프테이크 — 2년 이상 LOI/계약이 있는가
- 성숙도 — 우리와 비슷한 규모 플랜트 레퍼런스 존재?
- 민감도 — 전력·원료·가동률이 20% 변해도 사업이 버티는지
- 보조금 —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성립하는 구조인지
경영진 보고 포맷
복잡한 그래프보다, 다음 네 줄만 매달 비교해도 충분합니다.
Baseline → 이번 달 액션 → 숫자 변화 → 배운 점
거기에 현장 사진 2장을 붙이면, 이야기 힘이 훨씬 커집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7가지 체크
자주 받는 질문 몇 가지
Q. 기후테크 투자는 그냥 ESG 점수 올리기용 아닌가요?
A. 그렇게 끝나면 가장 아쉽습니다. 사실 제대로 설계된 프로젝트는 에너지·원료 비용 절감 → 규제 리스크 완화 → 신규 매출로 이어지는 재무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ESG 점수는 그 결과로 따라오는 보너스에 가깝고요.
Q. 열분해와 기계 재활용, 하나만 선택해야 하나요?
A. 둘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서로 빈칸을 채워주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이론상 등급이 잘 나오는 스트림은 기계 재활용으로 가는 것이 단가·품질 측면에서 유리하고, 필름·다층·오염도가 높은 스트림은 열분해 같은 화학적 전환으로 출구를 만드는 방식이 전체 회수율을 올리는 데 효과적입니다.
Q. 배터리 저장용량은 몇 시간짜리가 적당할까요?
A. “정답”은 없고, 부하 패턴·요금제·태양광 유무를 같이 봐야 합니다. 피크 절감·자가소비 확대 목적이라면 보통 1~2시간급이 많이 쓰이고, 전력 시장 참여나 장주기용으로는 4시간 이상도 검토하지만, 그만큼 투자비와 리스크가 커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