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를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와요. “나 나름 열심히 줄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줄인 거지? 이게 의미가 있나?” 감으로만 하다 보면 금방 지치고, 죄책감만 남을 때도 있죠.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숫자입니다. 기분 대신 기록을 두는 순간, 잘된 날과 힘들었던 날의 패턴이 보이고 “다음 달엔 딱 이거 하나만 바꿔보자” 같은 구체적인 액션이 나옵니다.
오늘은 복잡한 탄소 계산기가 아니라, 스마트폰 메모와 간단한 표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생활 지표 설계 & 자동화 루틴을 정리해 볼게요. 조금만 적어도, 습관은 훨씬 오래 갑니다.
1. 핵심 지표 6가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모든 걸 다 기록하려고 하면 3일 만에 지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생활에 바로 연결되는 6가지 지표만 추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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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배달 횟수
– 배달앱이 보내주는 월간/주간 리포트로 자동 집계가 가능합니다.
– 목표는 거창하게 “0”이 아니라, “전월 대비 -1회” 정도로 가볍게. -
일회용 컵 사용 횟수
– 카페에서 종이·플라스틱 컵을 쓴 날을 체크합니다.
– 동시에 텀블러 사용일도 함께 적어두면 줄이는 것과 잘한 것 둘 다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요. -
플라스틱 포장 부피(리터)
– 너무 정확할 필요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플라스틱 통의 대략적인 부피를 적습니다.
– 예: “이번 주 플라스틱 15L 정도” 이런 식으로요. -
리필/벌크 구매 비중(%)
– 장보기 하나 할 때, 리필·무포장·벌크로 산 품목이 몇 개인지 세어 보고 전체 품목 수로 나눠 대략의 비율만 기록합니다.
– 예: “총 10개 중 3개 리필 → 30%”. -
재사용 용기 사용일 수
– 도시락, 텀블러, 개인 런치박스, 다회용 수저 세트 등을 쓴 날에 체크.
– “이번 주에 내가 직접 줄인 일회용품의 횟수”가 눈에 보입니다. -
식비 중 ‘포장 프리미엄’ 추정액
– 소분 포장, 테이크아웃 용기, 편의점 간편식 등 포장 때문에 더 비싼 품목에 쓴 돈을 대략 합산해 봅니다.
– “이번 달엔 포장 프리미엄 2만 원 썼네”라고 숫자로 마주해 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달 선택이 달라져요.
2. 도구: 스마트폰 메모 + 스프레드시트 한 장이면 끝
기록 도구는 최대한 단순해야 오래 갑니다. 전용 앱을 파도 되지만, 사실 메모장 + 스프레드시트 조합이면 충분해요.
① 메모 템플릿 만들기
스마트폰 메모 앱이나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방에 아래처럼 템플릿을 하나 만들어둡니다.
[제로웨이스트 기록 - 주간] 배달 횟수: 일회용 컵: 플라스틱 포장(리터): 리필/벌크 비중(%): 재사용 용기 사용일: 포장 프리미엄(원):
주 2회 정도(예: 수요일, 일요일 밤) 생각나는 대로 숫자만 채워 넣어도 충분합니다.
② 스프레드시트 한 장
- 열(columns): 날짜 / 배달 / 컵 / 플라스틱(L) / 리필(%) / 용기일 / 포장프리미엄
- 행(rows): 주 단위 or 일 단위로 한 줄씩 입력
- 합계·평균은 자동 계산 함수로 한 번만 설정해두면 끝
이렇게 모인 숫자는 나중에 그래프로도 쉽게 바꿀 수 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줄였네?” 하는 확인이 한 번쯤 필요할 때 큰 힘이 됩니다.
3. 자동화 팁: 생활 루틴 속에 슬쩍 끼워 넣기
기록도 결국 습관이라, “굳이 기억해야 하는 일”이 되면 금방 잊혀집니다. 생활 루틴에 그냥 끼워 넣는 방식이 훨씬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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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 리포트 스크린샷
– 배달앱에서 보내주는 월간 리포트를 캡쳐해 ‘제로웨이스트’ 앨범에 모아두세요.
– 매달 한 번 앨범만 넘겨봐도 “요즘 많이 줄였네/늘었네”가 바로 보입니다. -
캘린더 알림으로 “루틴화”
– 매주 월·목 오전에 “외출 키트 점검(텀블러/에코백/수저)” 알림을 걸어 두면 실사용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숫자도 좋아져요. -
정기구독 점검
– 커피 캡슐, 간편식, 생수 정기배송 등은 리필 가능·포장 덜한 제품만 남기고 나머지는 해지해 봅니다.
– 구독 목록 정리 한 번으로, 이후 쓰레기량과 지출이 같이 줄어듭니다.
4. 월간 리뷰: 비교는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한 달에 한 번, 주말 오전이나 저녁에 기록해 둔 숫자들을 모아 간단한 그래프를 그려보세요. 엑셀·구글 시트의 기본 막대그래프면 충분합니다.
리뷰할 때 볼 것
- 지난달보다 눈에 띄게 오른 항목은 무엇인지
- “그래도 이건 잘했다” 싶은 숫자는 무엇인지
- 다음 달에 딱 하나만 바꿔볼 행동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 일회용 컵 횟수가 늘었다 → 현관에 텀블러·머그컵을 눈에 띄게 걸어두기
- 배달 횟수가 늘었다 → 주 1회 ‘미리 조리 데이’를 캘린더에 넣기
- 리필 비중이 낮다 → 다음달 장보기에서 “리필 1개 이상 사기”를 목표로
비교의 대상은 다른 사람도, 완벽한 기준도 아닙니다. 그냥 어제의 나와만 비교하면 충분해요. 목표는 낮게, 개선은 작게—그래야 꾸준히 갑니다.
5. 가족과 함께하는 동기부여: 게임처럼 만들어보기
혼자만 기록하면 좋은데, 가족까지 함께 하면 훨씬 재밌고 오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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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점수판 만들기
냉장고나 현관 옆에 ‘제로웨이스트 점수표’를 붙여 보세요.
– 텀블러 사용: +1점
– 리필/벌크 구매: +1점
– 배달 없는 날: +2점
– 일회용 컵 사용: -1점 … 이런 식으로요.
주말마다 합산해서 작은 보상(간식, 영화 선택권 등)을 줘도 좋습니다. -
아이들과 ‘플라스틱 탐정 놀이’
– 하루 동안 집 안에서 발견한 플라스틱을 그림이나 글자로 기록해 보기
– “이건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를 같이 이야기해 보면 잔소리 대신 호기심이 동력이 됩니다.
마무리: 숫자는 비난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줍니다
기록을 시작하면, 가끔은 숫자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왜 또 이렇게 많이 썼지…” 하는 자책이 올라올 때도 있고요.
하지만 숫자는 우리를 꾸짖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음 선택을 조금 더 쉽게 만들어 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아, 이 부분을 한 번 손보고 가보자” 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작은 나침반 정도로만 생각해 주세요.
오늘 메모 앱에 템플릿 한 줄만 만들어도 괜찮고, 냉장고에 체크리스트 한 장 붙여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숫자들이 쌓여서 당신의 습관을 바꾸고, 조금씩 지구의 내일을 바꿔 줄 거예요. 느리더라도, 함께 꾸준히 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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